열정과 애수에 찬 마리아치의 고향, 과달라하라.
글/사진 - 함길수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셀마 헤이엑 주연의 영화 '데스페라도' 가 뇌리를 스친다. 로베르트 로드리게즈 감독이 제작한 이 영화는 거의 코미디 수준이지만 영화 도입부에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술집에서 기타를 치면서 멕시코 전통 음악을 구성지게 부르고 있다. 바로 이 음악이 멕시코와 라틴계 전통 음악인 마리아치들의 애수에 찬 생활 음악이다.
마리아치는 멕시코 과달라하라의 보편적인 댄스 오케스트라의 명칭이다. 예전에는 현악기를 위주로 편성하여 연주하였으나 현재는 트럼펫 등의 관악기를 첨가하여 경쾌하며 다이나믹 해졌다. 20세기 초 할리스코주에서 처음으로 시작되어 차츰 다른 도시로 파급된 과달라하라의 상징성 짙은 예술 음악이다.
야외파티 등에서 연인의 구애를 위한 배경음악으로 지금도 널리 애용되고 있으며 댄스를 위하여 연주되는 과달라하라의 향토색이 짙은 악단이다. 칸시온 프란첼라의 반주에 응용되기도 하는데 주로 과달라하라 서민들의 골 깊은 삶의 애환을 달래주고 있다.
강한 문화 자존심의 도시 과달라하라
과달라하라는 강한 자존심의 도시이다. 수도 멕시코 뒤에 서서 2인자로 있기를 거부하는 문화의 예술성 짙은 고도이다. 그래서 가장 멕시코적인 것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이 도시는 500년 역사의 전통과 현대의 모습이 어우러져 세계적이며 현대적인 메트로폴리스의 면모를 잘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할리스코 주의 수도이기도한 과달라하라는 인구와 경제면에서 멕시코 제2의 도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전통과 문화에서만은 멕시코와 어깨를 나란히 하기를 거부하고 있다. 자존심이 강한 반면, 사람들은 심성 곱고, 부지런하며 친절하다. 라틴 아메리카에서 가장 아름답고, 편리하며 풍요로운 도시 면모를 자랑하고있다.
할리스코 주의 상징성으로 대변되는 과달라하라는 콜로니얼의 전통과 조화를 이룬 시가지의 독창성을 뽐내고 있다. 그 중에서도 과달라하라를 대표하며 아름다운 상징성을 자랑하는 건축물이 과달라하라 카테드랄이다. 60여년간에 걸쳐 건조된 이 건물은 당시 시 예산의 1/3이 소비될 정도로 이 도시의 상징성을 표방하고 있는 것이다. 비잔틴, 코린트, 토스카나, 아라비아 등 유럽의 다양한 건축 양식을 사용하여 축조된 과달라하라 건축과 문화의 자존심이다.
카데드랄을 기점으로 Morelos거리와 Hidalgo거리가 동쪽 자유의 광장까지 평행선을 유지하며 이어지는데 이곳에 서민의 중심지인 자유의 광장과 데고야도 극장(Teatro Degollado)등 과달라하라의 상징적인 명소가 한곳에 집결해 있다 다름아닌 과달라하라 삶과 문화, 경제와 예술혼의 중심지인 것이다. 하늘을 향해 치솟는 분수를 중심으로 광대들과 시민들이 한데 어우러져 흥겨운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어린이들의 재롱과 연인들의 뜨거운 밀애 장면 등, 자연스런 삶과 문화의 흔적들이 여행자의 마음을 유혹하는 곳이다.
바로 이곳에서 이 도시의 문화 혼과 같은 존재, 마리아치의 낭랑한 음률이 흐른다. 리베르타드 시장입구에서부터 음률의 이벤트는 시작된다. 멋지게 차려 입은 본고장 마리아치들의 뜨거운 구애가 시작되는 것이다. 4~8명으로 구성된 마리아치들이 사랑의 쎄레나데를 부르며 그들의 음악을 선사하려 몸짓과 눈짓으로 그들의 인생을 노래한다. 그 유명한 Plaza de los Mariachis의 화려한 무대인 것이다.
거리의 악사로 유명한 마리아치라는 직업은 어른뿐 아니라 아이들에게도 이미 흥미와 도전의 대상이다. 이미 10살에 마리아치의 세계에 푹 빠져, 40~60 세의 중 장년들이 하는 마리아치를 마치 자기 인생의 전부인양 마리아치를 극찬하는 어린 소년들도 눈에 많이 띈다. 소년에서 노년까지 마리아치는 남녀 노소를 가리지 않고 과달라하라의 전통 예술이자 생활 문화의 한 쟝르로 깊게 자리하고 있다.
4~8명 정도의 그룹으로 이동하며 연주하는 마리아치는 한 곡 불러주고 받는 돈이 만원도 채 되질 않는다. 그 돈을 마리아치 전체 단원들과 나누어야 하기에 그들의 생활은 빈곤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들은 인생을 음악의 선율에 맡기고 자신의 음악에 감탄하며, 함께해주는 이들을 위해 가난도 무릅쓴 채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과달라하라는 세 개의 주요한 도시들 싸뽀빤, 뜰라께빠께 그리고 또날라와 인접해있어 문화의 핵을 이루고 있다. 시원하게 뻗어있는 대로들과 웅장한 기념 건물들, 녹음이 짙은 넓은 광장들은 이 도시의 자랑이다. 소란한 시장, 언제나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이벤트들로 관광객들은 쾌적한 도로를 산책하며 이 도시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한 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움과 인정 넘치는 과달라하라는 가는 곳마다 관광객들의 발길을 멈추어 세우고 있다.
과달라하라의 정통성, 마리아치
멕시코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로의 입성은 전통음악 마리아치로 인해 더욱 설레이는 만남이다. 인근 할리스코 주의 상징도시 떼낄라와 뜰라께빠께를 거치기 전 어느 누구도 이 웅장하면서도 거대한 문화의 도시를 스쳐 지나갈 수 없다. 라틴 문화의 원류라 할 수 있는 스페인 방문 이후 다시 찾은 멕시코지만 멕시코의 속살을 만나보는 설레임은 문화원류 스페인을 만날 때 보다도 긴장감은 더욱 고조된다.
그것은 마리아치와의 만남 때문인데 그들의 비밀을 찾아 떠나본다. 마리아치들의 활동 무대는 매우 한정적이다. 주로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유명한 장소인 Plaza de los Mariachis와 뜰라께빠께에 위치한 인기 있는 정원 레스토랑 엘 아바헤뇨(El Abajeno)로 한정되는데 감칠 맛 나는 전통 음식과 맥주를 곁들여 마시며 마리아치들의 연주에 심취해 보는 것이다. 이 두 무대의 공통점과 마리아치들의 삶의 단면들을 살짝 들추어 보기로 하자.
Plaza de los Mariachis에서 만나게 되는 마리아치는 통상 4∼8명으로 편성되어 있으나 요청에 의해 10명 이상으로 편성되는 경우도 있다. 2대의 바이올린과 ·트럼펫, 그리고 기타 모양의 악기 등으로 편성되는데, 경우에 따라 하프· 만돌린 ·더블베이스 등을 포함시키거나 클라리넷을 보충하여 거대한 악단의 형태를 구성하는 경우도 있다. 보통은 트럼펫·바이올린이 멜로디를 맡고 기타가 리듬을 담당한다.
챙이 넓은 모자인 솜브레로로 멋을 내고 전통의상 차우를 걸친 멕시코의 대표적인 음악 마리아치는 메스티조 문화를 투영하는 데 가장 적합한 산물이라 할 수 있다. 바이올린, 하프 등과 같은 유럽적인 요소와 기타를 변용 한 비우엘라, 그리고 트럼펫으로 대변되는 뉴올리안즈의 딕시 문화의 적극적 유입이 마리아치를 통해 독창적 과달라하라의 문화코드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마리아치는 기본적인 악단의 형태를 일컫기도 하고 음악장르로 분류되기도 한다. 게다가, 멕시코의 민속음악 전반에 걸친 상징적 의미도 함께 포용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멕시코 북서부의 할리스코 주, 과달라하라에서 주로 연주되었다는 것이다. 그 뿌리에는 결혼식이나 마을의 다양한 행사를 빛내는 공동체 문화 속의 향토색 짙은 음악으로 출발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마리아치가 초기 멕시코 민중들의 대표적인 음악으로 각광 받게 된 것은 19세기 초반 스페인과의 독립전쟁 당시였다. 전쟁으로 인한 복합적인 인종과 문화가 난립했던 멕시코 국민들에게 마리아치는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공통 분모였으며 이러한 동질성은 멕시코 독립전쟁의 승리를 견인한 원동력이 되었다.
마리아치의 연주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고단한 일상에서도 낭만적인 삶을 향유하고자 했던 멕시코 민중들의 낙천적인 성격도 고스란히 읽을 수 있다. 달콤한 선율과 데낄라에 흠뻑 젖어 인생을 즐기는 멕시코인들의 서정으로부터 우리는 마리아치가 지닌 매력을 가늠해 볼 수 있다. 다름을 차별하기보다 수용할 줄 아는 넓은 포용력이 여유로움으로 승화될 수 있음을 마리아치는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실베스트레 바르가스는 최초로 정규교육을 받은 마리아치 음악인으로 마리아치의 열풍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킨 인물이다. 악단 마리아치 바르가스를 창설하여 마리아치의 전통을 계승하게 한 것은 그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설적인 작곡가 토마스 멘데스 소사는 마리아치의 명곡들을 세계로까지 퍼지게 한 거장들이다. 이러한 탄탄한 배경 속에 과달라하라의 마리아치는 과거의 유산이 아닌 동시대의 음악으로 사랑 받고 있다.
마리아치의 오리지날 고향 뜰라께빠께
떼낄라와 마리아치는 과달라하라의 모든 것이다. 그 중에서도 마리아치(Mariachi)의 서민적이면서도 슬픈 멜로디에 젖은 우수가 과달라하라의 으뜸가는 매력으로 자리하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한국 분의 소개로 늦은 밤 뜰라께빠께로 향했다.
민예품 일색의 도시 뜰라께빠께는 과달라하라의 센트로에서 동남쪽으로 8km지점에 위치해 있다. 유리 세공과 화려한 색상의 도자기들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이곳 민예품 점들은 향토색 강한 이곳의 지방색을 대변하고 있었다. 그것은 화려한 색상으로 표현되어지고, 다양한 형태의 문양들로 그 예술성을 높여가고 있다. 멕시코 전통 모포인 사라페와 멕시칸 스타일의 소가죽 부츠는 구매력 높은 민예품이자 일등 관광상품이 된지 오래다.
작은 도시를 어슬렁 거리며 걷는 재미도 쏠쏠하다. 골목들마다의 다양한 건축 패턴과 길거리 레스토랑과 바의 유혹도 물리치기 어렵다. 무엇보다도 강한 전통을 고집하며 화려하고 강렬한 색상의 도시 미관이 전해주는 이 도시의 상징성은 태양이다. 빛으로 표현되기도 하지만 단연 태양이라 말해야 한다. 태양의 강렬한 햇살이 예술과 문화 혼을 창조해 온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태양과 더불어 음악에 빠져 예술을 노래하고 있는것이다.
마리아치의 본고장 도시 뜰라께빠께(Tlaquepaque)에서는 과달라하라에서 보다 오히려 그 원조다운 전통과 멋진 공연들을 느낄 수 있어 정통 마니아들이 즐겨 찾고 있었다. 과달라하라의 중심, 마리아치 거리(Plaza de los Mariachis)에서 듣던 정통 마리아치들의 공연은 토속적이며 인간적이다. 그러나 본고장이라 일컫는 뜰라께빠께에서는 더욱 낭만적이며, 현대적이고 공감각적으로 만나게 된다.
다양한 계층의 대중들과 어우러져 듣는 낭만과 흥겨움이 과달라하라 마리아치 거리보다 뜰라께빠께를 오래도록 기억하게 한다. 함께 어깨를 들썩이며, 술잔을 누구와도 함께 기울인다. 좋은 음식과 함께하며, 여유로운 즐거움을 나누는 마리아치들의 흥겨운 음악이 과달라하라의 그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그것은 향유와 축제로 이어지고 있었다.
뜰라께빠께와 과달라하라는 다르지만 하나이며, 하나이면서 반드시 다름을 추구하고 있다. 그것은 정통성으로 매듭지을 수 있는데 독자적인 의상 취향과 무대의 남다른 세팅이 그 다름을 이야기 하고 있으며 열정과 인간미, 슬픈 애수 등은 마리아치를 하나의 상징성으로 통합하는 다름 속의 하나인 것이다.
매일밤, 방문자들을 매료시키던 마리아치들과의 만남은 스페인 세비야의 플라맹코처럼 격정과 낭만을 선사하고 있다. 우리들의 인생이 거친 세상과 아름다운 자연을 탐험 하듯, 그들은 오선의 선율을 탐험하며 세상에 따스함과 아름다운 음률을 선사하고 있다. 마리아치의 열정과 희망이 과달라하라를 더욱 정렬적으로 만날 수 있도록 인도하고 있었다.
마리아치들의 소박하면서도 열정적인 모습은 멕시코에서도 과달라하라의 강인함과 정통성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었다. 제2의 도시 과달라하라는 대국 멕시코를 앞서가는 자존심과 자부심으로 가득한 도시로 재 탄생시키고 있다. 경제보다 문화와 정통성에 더욱 힘을 싣고 있는 과달라하라는 멕시코 중부 도시 중 가장 강인하고 근성 있는 문화 도시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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